미국·중국·영국·싱가포르·캐나다와 나란히… 한국·일본, AI 최상위 그룹 첫 합류
AI 모델 개발 세계 5위권·대규모 공공 투자가 견인… "전략보다 실행 속도가 승부처"
피지컬 AI 시대 개막… 제조업 강국 한국, 산업 현장 성과로 증명해야
한국이 글로벌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마침내 ‘1군'에 이름을 올렸다. 불과 2년 전 ‘2군' 평가를 받았던 한국이 미국, 중국과 같은 최상위 그룹에 진입하면서 국가 AI 경쟁력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지난 20일 전 세계 75개 이상 경제권을 대상으로 AI 성숙도를 분석한 ‘AI 성숙도 매트릭스 2026’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과 일본은 최상위 단계인 ‘AI 선도국(AI Pioneers)’으로 새롭게 분류됐다. 기존 선도국인 미국, 중국, 영국, 싱가포르, 캐나다에 두 나라가 더해지면서 최상위 그룹은 7개 경제권으로 늘어났다. 2024년 첫 조사 이후 이 그룹에 새로 진입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하다.
■ ‘2군' 꼬리표 2년 만에 뗐다
이번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극적인 반전 때문이다. BCG가 2024년 말 73개국을 대상으로 처음 발표한 AI 성숙도 평가에서 한국은 일본, 독일, 프랑스, 대만 등과 함께 두 번째 그룹인 '안정적 AI 경쟁국'에 머물렀다. 당시 정부가 영국 토터스미디어의 '글로벌 AI 순위'를 근거로 세계 3위권을 강조해 왔던 만큼, BCG의 평가는 국내 AI 업계에 적지 않은 위기감을 안겼다.
그로부터 2년 만에 한국은 선도국 반열에 올라섰다. 2024년 조사 당시 한국은 선도국 바로 아래 단계인 준비도 상위 25% 그룹에 속해 있었다.
■ 자체 AI 모델·인프라 투자가 '승부수'
BCG는 한국의 약진 배경으로 자체 AI 모델 개발 경쟁력과 함께 컴퓨팅 인프라 및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대규모 공공 투자를 꼽았다. 실제로 한국은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Stanford HAI)가 발간한 ‘2026 AI 인덱스'에서 주목할 만한 AI 모델 개발 부문 세계 5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평가는 두 가지 축으로 이뤄졌다. AI가 주요 산업과 일자리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뜻하는 ‘AI 노출도', 그리고 이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인 ‘AI 준비도'다. AI 준비도는 국가 목표, 인재, 정책·규제, 투자, 연구·혁신, 생태계 등 6개 영역을 종합 평가한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총 8개 경제권이 2024년보다 한 단계 높은 평가를 받았다.
■ "이제는 속도전"… 인재·인프라가 관건
BCG는 이제 대부분의 국가가 AI 전략을 갖추게 된 만큼, 전략을 실제 역량과 경제 변화로 연결하는 실행 속도가 국가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됐다고 진단했다.
이를 위한 과제로는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 컴퓨팅·전력·네트워크 인프라 확충, AI 전문인력 확보, 민간투자를 이끌어낼 정책 환경 조성 등을 제시했다. 외르크 힐데브란트 BCG 공공부문 글로벌 리더 역시 핵심 산업의 AI 전환을 앞당기는 국가가 미래 경쟁력을 쥐게 될 것이라며, 고급 인재 확보와 민간투자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주권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도 담겼다. 보고서는 반도체, 컴퓨팅·클라우드, AI 모델, 애플리케이션이라는 AI 주권의 4대 요소를 모두 독자적으로 확보한 국가는 극히 드물다며, 각국이 스스로 확보할 영역과 해외 협력으로 보완할 영역을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피지컬 AI 시대, 제조 강국 한국의 기회
보고서는 AI의 영향력이 지식 기반 산업을 넘어 제조업, 물류, 농업 등 물리적 산업으로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산업 자동화로 대표되는 '피지컬 AI'의 부상이다. BCG는 제조업과 산업용 로봇 강점을 바탕으로 피지컬 AI에 집중하는 대표 국가로 일본과 중국을 꼽았다.
한국에도 기회는 열려 있다. 황형준 BCG 코리아 대표는 이번 선도국 진입이 AI 역량과 생태계 구축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보여준다고 평가하면서도, 이제 남은 과제는 이 기반을 실질적인 산업 경쟁력과 사업 성과로 연결하는 일이라고 짚었다. 특히 한국이 보유한 세계적 수준의 제조업 기반과 현장 데이터, 운영 노하우를 AI와 결합하면 인더스트리얼 AI와 피지컬 AI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이번 평가가 ‘AI 3대 강국(G3)’ 도약을 목표로 내건 한국에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선도국 타이틀은 출발선일 뿐, 반도체·자동차·조선·배터리 등 주력 산업 현장에서 AI 전환의 성과를 얼마나 빨리 입증하느냐에 따라 한국 AI의 진짜 위상이 결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