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G ‘AI 성숙도 매트릭스 2026’, 한국·일본 최상위 그룹 첫 진입
독자 AI 모델·GPU 인프라 투자 결실…다음 승부처는 제조업 AI 전환과 경제 성과
한국이 글로벌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처음으로 최상위 ‘AI 선도국' 반열에 올랐다. 불과 2년 전 같은 평가에서 ‘2군'으로 분류됐던 한국이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과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 투자를 앞세워 미국·중국과 같은 그룹에 진입한 것이다. 정부 AI 정책을 이끄는 하정우 국가인공지능(AI)전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를 정책의 결실로 평가하면서도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라며 실행력과 경제적 성과 창출을 강조했다.
■ BCG "한국·일본, AI 선도국 신규 편입"…최상위 그룹 7개국으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지난 20일 전 세계 75개 이상 경제권의 AI 역량을 분석한 ‘AI 성숙도 매트릭스 2026’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과 일본은 최상위 단계인 ‘AI 선도국(AI Pioneers)’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미국·중국·영국·캐나다·싱가포르 5개국으로 구성됐던 선도국 그룹은 7개 경제권으로 늘었다. 2024년 첫 조사 이후 선도국 그룹에 새로 진입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곳뿐이다.
BCG는 한국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체 AI 모델 개발 역량, 그리고 컴퓨팅 인프라와 AI 생태계 조성을 위한 대규모 공공투자를 꼽았다. 특히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2026 AI 인덱스'를 근거로 한국이 주목할 만한 AI 모델 개발 부문에서 세계 5위권에 들었다는 점을 제시했다.
■ 2024년 '안정적 경쟁국'에서 2년 만에 한 단계 도약
이번 결과는 2년 전과 비교하면 극적인 반전이다. BCG가 2024년 11월 73개 경제권을 대상으로 처음 내놓은 AI 성숙도 매트릭스에서 한국은 일본·프랑스·독일 등과 함께 2군 격인 '안정적 경쟁국'으로 분류됐다. 당시 정부가 내세운 ‘AI 3대 강국(G3)’ 목표와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잇따랐고, 연구개발(R&D)과 혁신 역량이 약점으로 지목됐다.
2년 사이 상황은 달라졌다. 이번 평가에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8개 경제권이 2024년보다 AI 준비도 단계가 높아졌다. 정부 주도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와 GPU 확보 경쟁이 국제 평가에 본격 반영되기 시작한 셈이다.
■ '노출도'와 '준비도' 두 축 평가…올해 컴퓨팅·자체 모델 지표 신설
BCG의 평가는 두 축으로 이뤄진다. AI가 산업과 일자리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뜻하는 '노출도', 그리고 AI가 만드는 기회를 활용할 국가 역량인 '준비도'다. 준비도는 국가 목표, 인재, 정책·규제, 투자, 연구·혁신, 생태계 등 6개 영역의 '아스파이어(ASPIRE)' 프레임워크로 측정한다. 올해는 컴퓨팅, 자체 모델 개발, 규제 관련 지표가 새로 추가됐다. 한국이 집중 투자해 온 분야가 평가 기준에 새로 반영되면서 순위 상승에 힘을 보탠 것으로 풀이된다.
BCG는 대부분 국가가 AI 전략을 갖추게 되면서 경쟁의 초점이 '전략 수립'에서 '실행'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역량을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크게 확보하느냐가 국가 AI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됐다는 분석이다.
■ 하정우 "독파모·GPU·생태계 투자 결실…선도국 진입이 끝 아니다"
하 부위원장은 BCG 보고서 발표 당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평가 결과를 직접 알렸다. 그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사업, GPU 등 AI 컴퓨팅 인프라 확충, AI 생태계 투자 전략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며 하나씩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그는 선도국 진입을 종착점이 아닌 출발점으로 규정했다. 국가AI전략위원회가 관계부처와 협력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향후 추진 방향으로는 지역 산업의 AI 전환(AX) 가속화, 청년 세대의 성장 기회 확대, 국내 AI 기업과 인재의 글로벌 시장 진출 지원을 제시했다.
■ 다음 승부처는 '피지컬 AI'…제조 강국 한국에 기회
BCG는 현재 정보통신·금융 등 지식 기반 산업에 집중된 AI의 영향력이 피지컬 AI와 AI 에이전트의 발전에 따라 제조업·물류·농업 등 물리적 산업으로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제조업과 산업용 로봇 분야의 강점을 앞세워 피지컬 AI 역량을 키우는 국가로는 일본과 중국을 꼽았다.
하 부위원장 역시 에이전틱 AI와 피지컬 AI의 확산이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한국에 더 큰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황형준 BCG코리아 대표도 한국이 보유한 세계적 수준의 제조 기반, 산업 현장에 쌓인 데이터와 운영 노하우를 AI와 결합하면 인더스트리얼 AI와 피지컬 AI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과제는 '성적표'를 '성과'로 바꾸는 일
선도국 진입은 분명한 성과지만 숙제도 남아 있다. BCG 보고서 공동 저자인 외르크 힐데브란트 BCG 공공부문 글로벌 리더는 앞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국가는 핵심 산업의 AI 전환을 가속하는 곳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고급 인재 확보와 민간 투자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결국 관건은 공공 주도로 쌓아 올린 모델과 인프라를 기업의 생산성과 매출, 일자리로 연결하는 일이다. 하 부위원장이 앞서 독파모가 벤치마크 점수를 넘어 시장에서 실제로 선택받는 모델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 선도국'이라는 간판을 경제적 성과로 증명하는 진짜 승부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