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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시장도 '속도 전쟁' 돌입…칼시, 실시간 오더북 열고 월가식 거래 인프라 구축

미국 최대 예측시장 플랫폼 칼시가 전용 광통신망 기반 초저지연 실시간 오더북 서비스 '더블제로 에지'를 도입하며, 스포츠와 암호화폐 시장을 중심으로 월가식 알고리즘 거래 인프라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예측시장도 '속도 전쟁' 돌입…칼시, 실시간 오더북 열고 월가식 거래 인프라 구축

미래 사건의 결과를 사고파는 예측시장이 밀리초 단위의 속도 경쟁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미국 최대 예측시장 플랫폼 칼시(Kalshi)가 실시간 오더북 데이터를 기관 트레이더에게 직접 흘려보내는 초저지연 시장 데이터 서비스를 가동했다. 이용자가 사건의 결과를 맞히는 베팅 플랫폼을 넘어, 주식·선물시장처럼 전문 트레이더와 알고리즘이 속도로 겨루는 금융시장형 인프라로 갈아타는 국면이다.

◇ 전용 광통신망 타고 오더북이 실시간으로 흐른다

칼시는 전용 글로벌 광통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시장 데이터 전송 서비스 '더블제로 에지(DoubleZero Edge)'를 통해 실시간 오더북 데이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예측시장에 초저지연 멀티캐스트 방식의 실시간 데이터 피드가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적용 대상은 우선 주요 스포츠 이벤트와 암호화폐 무기한 선물 계약이며, 단순 체결가가 아닌 오더북 뎁스, 즉 호가별 잔량 정보까지 열린다.

핵심은 데이터를 조금 더 빨리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구조 자체가 바뀐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존 방식에서 기관 트레이더는 칼시의 API를 반복 호출해 주문 데이터를 받아온 뒤, 이를 조합해 현재 오더북 상태를 스스로 복원해야 했다. 요청과 응답 사이에 시차가 생기고, 여러 거래자가 같은 시장을 들여다봐도 정보를 받아드는 시점이 서로 어긋날 수 있다.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에서는 주문과 가격이 움직이는 즉시 시장 정보가 밀려 나온다. 트레이더는 데이터를 계속 요청하지 않고도 매수·매도 주문의 변화를 곧바로 포착할 수 있다. 특정 경기에서 승리 확률을 반영한 계약 가격이 급변하거나, 암호화폐 가격 급등락으로 관련 계약에 주문이 몰릴 때 알고리즘이 호가 변화를 즉시 감지해 전략을 수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시장조성자와 유동성이 바뀐다

실시간 오더북의 최대 수혜자는 시장조성자다. 시장조성자는 매수와 매도 주문을 끊임없이 제시하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주문 상황을 빠르게 읽어낼수록 가격 변동에 대응하기 쉬워지고, 매수·매도 호가 차이인 스프레드도 좁힐 수 있다. 데이터 인프라 개선이 거래 속도에 그치지 않고 예측시장의 유동성과 가격 형성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주식·선물시장에서는 같은 정보를 몇 밀리초라도 먼저 받아 주문에 반영하느냐가 성과를 가른다. 이 때문에 거래소와 기관투자자는 오랜 기간 초저지연 네트워크와 전용 데이터 피드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왔다. 칼시가 동일한 문법의 인프라를 예측시장에 이식했다는 사실은 이 시장의 성격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 경쟁의 축이 '무엇을'에서 '얼마나 빠르게'로

초기 예측시장은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비트코인이 특정 가격을 넘을 것인가'처럼 집단의 전망을 확인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거래 규모가 불어나고 기관과 전문 트레이더가 진입하면서 시장을 움직이는 동력이 달라지고 있다. 결과를 맞히는 예측력만이 아니라 가격 차이를 이용한 차익거래, 자동화된 시장조성, 알고리즘 거래 같은 전통 금융시장의 전략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경쟁 기준도 이동한다. 지금까지는 '어떤 사건을 상장했는가', '이용자를 얼마나 확보했는가'가 승부처였다면, 앞으로는 거래소의 기술 인프라가 결정적 변수로 부상할 수 있다. 기관 자금이 들어오려면 빠른 데이터만으로는 부족하고 안정적인 주문 처리 능력, 충분한 유동성, 리스크 관리 체계 등 전통 금융 수준의 거래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칼시가 스포츠와 암호화폐 계약부터 실시간 오더북을 적용한 배경도 분명하다. 두 영역 모두 정보와 가격이 초 단위로 요동친다. 스포츠는 득점과 부상, 경기 흐름에 따라 확률이 순식간에 뒤집히고, 암호화폐는 24시간 내내 가격이 움직인다. 실시간 데이터의 가치가 가장 크게 발휘되는 지점부터 금융시장형 설비를 깔아나가는 전략이다.

◇ 예측시장, 파생상품 시장으로 진화하나

장기적으로는 예측시장의 정체성 자체가 재정의될 가능성이 있다. 예측시장은 통상 '미래 사건에 돈을 거는 시장'으로 통했지만, 거래 규모 확대와 실시간 오더북, 알고리즘 거래, 전문 시장조성자가 결합하면 사실상 새로운 파생상품 시장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

국내 투자자에게도 시사점이 작지 않다. 예측시장이 규제 밖 베팅 서비스가 아니라 시장 인프라와 유동성 지표로 평가받는 단계에 접어들면, 금융당국의 상품 분류와 투자자 보호 논의도 함께 따라올 수밖에 없다.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오더북 품질과 체결 인프라가 거래소 경쟁력을 좌우해온 흐름이 예측시장에서도 반복될 공산이 크다.

결국 칼시의 실시간 오더북 도입은 단순한 기술 업그레이드 이상의 신호다. 예측시장의 다음 경쟁이 '무엇을 예측할 것인가'에서 '얼마나 빠르고 정교하게 거래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는 선언에 가깝다. 주식과 선물시장에서 벌어졌던 초저지연 데이터 경쟁이 예측시장으로 번지면서, 이 시장은 개인의 전망을 사고파는 공간에서 기관과 알고리즘이 맞붙는 새로운 금융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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