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로봇이 아닙니다’ 인증까지 뚫었다
이미지·문자·체스·리듬게임 등 48개 관문 완주
사람과 AI 구별하던 캡차, 새로운 보안 방식 요구 직면
인터넷에서 사람과 로봇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캡차(CAPTCHA)’의 장벽을 최첨단 인공지능이 넘어섰다. 오픈AI의 차세대 AI 모델 ‘GPT-6 아스트라(GPT-6 Astra)’가 48단계로 구성된 인간 증명 테스트를 모두 통과하면서 AI의 컴퓨터 조작 능력과 시각 인식, 추론 능력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9일 국내외 관련 보도에 따르면 오픈AI의 샤리프 샤밈 개발자는 8일 현지시간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GPT-6 아스트라에게 온라인 게임 ‘아임 낫 어 로봇(I'm Not a Robot)’을 수행하도록 한 결과 전체 48개 단계를 모두 해결했다고 밝혔다. 마지막 단계까지 완료한 아스트라는 결국 ‘You Are Human’, 즉 인간임을 인증하는 화면과 이른바 ‘인간 증명서’까지 획득했다.
이번 테스트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단순히 어려운 퍼즐 하나를 AI가 풀었다는 데 있지 않다. 캡차는 오랫동안 인터넷에서 사람과 자동화 프로그램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보안 장치로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
CAPTCHA는 ‘Completely Automated Public Turing test to tell Computers and Humans Apart’의 약자로, 사람이 쉽게 해결하지만 기계는 해결하기 어렵도록 설계된 자동화된 테스트를 뜻한다. 웹사이트 회원가입이나 로그인, 게시물 등록, 티켓 구매 등에서 나타나는 ‘로봇이 아닙니다’ 확인창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번에 아스트라가 도전한 ‘아임 낫 어 로봇’은 개발자 닐 아가왈이 CAPTCHA를 소재로 제작한 48단계 온라인 퍼즐 게임이다. 단순한 체크박스를 누르는 문제에서 출발해 왜곡된 문자 판독, 정지표지판이나 특정 사물이 포함된 이미지 찾기, 비슷하게 생긴 사물 구별하기 등 기존 CAPTCHA와 유사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과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원을 정확하게 그리거나 리듬을 맞추고, 공간을 이해해 물체를 조작하며, 체스와 대화형 문제까지 해결해야 한다. 즉 단순한 이미지 인식만으로 통과하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의 판단과 컴퓨터 조작 능력을 요구하는 테스트이다.
아스트라가 48단계를 모두 해결했다는 것은 최신 AI가 텍스트를 생성하는 수준을 넘어 화면을 직접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AI 에이전트’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이미지 속 물체를 파악하는 시각 인식 능력, 여러 단계의 지시사항을 기억하고 실행하는 추론 능력, 마우스 클릭과 화면 이동 등 컴퓨터 사용 능력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오픈AI가 공개한 공식 성능 자료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확인된다. GPT-6 아스트라는 컴퓨터 사용 평가인 OSWorld 2.0에서 72.6%, ScreenSpot-Pro에서 92.7%의 성능을 기록했다. 업무 자동화와 웹 탐색, 코딩 등 여러 영역에서도 이전 모델보다 향상된 성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결과를 ‘AI가 실제 인터넷의 모든 CAPTCHA 보안을 완전히 무력화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스트라가 통과한 것은 실제 특정 기업의 보안 시스템 전체가 아니라 CAPTCHA와 인간 인증 방식을 소재로 만든 48단계 온라인 퍼즐 게임이기 때문이다. 실제 웹사이트의 봇 탐지 시스템은 이미지 문제뿐 아니라 접속 환경, 이용 행동, 위험 점수, 네트워크 정보 등 여러 요소를 결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례가 웹 보안 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상당하다. 과거에는 ‘사람에게는 쉽지만 컴퓨터에는 어려운 문제’를 제시하는 것만으로 사람과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AI가 사람처럼 화면을 보고 이해하고 마우스를 조작하며 복합적인 문제까지 풀 수 있게 되면서 이러한 전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주목되는 부분은 아스트라의 능력이 일반적인 화면 조작을 넘어 사이버보안 분야에서도 크게 향상됐다는 점이다.
오픈AI는 GPT-6 아스트라가 자사의 준비태세 프레임워크에서 사이버보안 능력 ‘Critical’ 기준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알려진 소프트웨어 취약점을 실제 공격 코드로 전환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ExploitBench에서는 100%의 점수를 기록했으며, 평가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제로데이 취약점 2개를 찾아 활용했다고 오픈AI는 설명했다. 이에 따라 회사는 고위험 사이버 기능에 추가적인 안전장치를 적용하고 있다.
결국 이번 48단계 인간 증명 테스트 통과는 AI 기술 발전의 흥미로운 기록인 동시에 인터넷 보안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앞으로 AI가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챗봇에서 벗어나 웹사이트를 탐색하고 프로그램을 실행하며 사람을 대신해 업무를 처리하는 AI 에이전트로 진화할수록 기존의 ‘사람인가, 로봇인가’라는 이분법적 인증 방식은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금융, 전자상거래, 암호화폐 거래소, SNS, 온라인 예약 및 티켓 판매처럼 자동화된 봇 공격에 민감한 서비스에서는 새로운 사용자 인증과 AI 탐지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GPT-6 아스트라는 AI가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됐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여러 종류의 시각·추론·조작 테스트를 하나의 AI가 연속적으로 해결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변화이다.
‘로봇이 아닙니다’라는 질문에 로봇이 스스로 답할 수 있는 시대가 시작된 셈이다. 앞으로 인터넷 보안의 핵심 질문도 ‘당신은 인간인가’에서 ‘이 행동을 실제 사용자가 승인했는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