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피지컬AI협회, 국회서 「피지컬AI 행동데이터 표준」 발표
서로 다른 AI 모델과 로봇이 한 언어로 학습하는 체계 구축 추진
ETRI 표준전문연구실 가동, 초기 단계부터 국제표준화 정조준
"생성형 AI가 텍스트를 먹고 컸다면, 피지컬AI는 행동데이터를 먹고 큰다"
AI 산업의 무대가 화면 밖으로 넘어가고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다루던 모델이 팔과 다리를 얻어 공장과 물류센터, 병원과 공공 현장으로 걸어 나오는 중이다. 그런데 이 전환에는 생성형 AI 시대에는 없던 병목이 하나 있다. 로봇이 겪은 경험을 다른 로봇이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피지컬AI협회는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K-피지컬AI 기술 자립으로 여는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 대전환'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한국피지컬AI협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공동 주최했으며, 한국피지컬AI협회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정보통신기획평가원 등이 주관했다.
이 자리에서 손병희 한국피지컬AI협회 표준협의회 의장(마음AI 연구소장)은 「피지컬AI 행동데이터 표준, 대한민국이 만들 공통 언어」를 주제로 발표했다. 요지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피지컬AI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몇 대의 로봇을 보유했느냐가 아니라, 몇 대의 로봇이 서로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학습 데이터의 성격이 바뀌었다
생성형 AI는 웹에 축적된 텍스트와 이미지라는 기성 데이터 위에서 성장했다. 데이터는 이미 존재했고, 문제는 이를 얼마나 잘 정제하고 얼마나 큰 모델에 태우느냐였다.
피지컬AI는 사정이 다르다.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가 아직 세상에 없다. 로봇이 직접 움직여야 생성되고, 움직이는 만큼만 쌓인다. 생성형 AI가 주로 텍스트와 이미지 등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발전했다면, 피지컬AI는 현실 세계에서 인간과 로봇이 어떻게 인지하고 판단하며 행동했는지를 담은 고품질 행동데이터가 기술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이 협회의 진단이다.
피지컬AI의 작동 구조는 감지와 판단, 물리적 행동, 피드백의 순환이다. 이 순환이 한 바퀴 돌 때마다 궤적과 힘, 접촉, 실패 지점이 기록으로 남는다. 문제는 그 기록의 형식이 제조사마다, 모델마다, 사업마다 제각각이라는 데 있다. 같은 실패를 한국의 로봇 수천 대가 각자 처음부터 다시 겪는 구조다.
표준은 규제가 아니라 학습 인프라다
행동데이터 표준은 로봇을 통제하기 위한 규칙이 아니다. 서로 다른 회사의 로봇과 서로 다른 파운데이션 모델이 같은 문법으로 경험을 주고받게 만드는 인터페이스에 가깝다. 협회는 서로 다른 AI 모델과 로봇이 행동데이터를 공동으로 학습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행동데이터 표준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글로벌 표준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발표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은 산업 현장의 오랜 관행을 정면으로 겨눈다. 정부가 로봇 한 대를 지원하면 사업이 끝난 뒤 로봇 한 대만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로봇이 보고, 움직이고, 판단하고, 실패하고 성공한 경험까지 다음 AI가 학습할 수 있는 자산으로 남아야 한다는 논리다. 하드웨어는 감가상각되지만 데이터는 축적되며, 그 축적의 속도가 곧 산업의 학습 속도가 된다.
협회는 이를 받아낼 공동 인프라로 '피지컬AI 데이터 트레이닝 센터' 구축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현장에서 발생한 행동데이터를 AI 학습과 검증, 실증으로 연결하는 파이프라인 역할이다.
제조 현장이 곧 데이터 발전소
대한민국이 이 표준을 주도할 수 있다고 보는 근거는 산업 구조에 있다. 제조와 국방, 물류 등 강점을 가진 산업 현장에서 생성되는 행동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시뮬레이션 데이터와 결합해 AI 학습과 검증, 실증으로 연결할 경우, 제조 경쟁력을 피지컬AI 시대의 데이터 경쟁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상위권 로봇 밀도와 반도체, ICT 역량, 24시간 가동되는 생산 라인은 그 자체로 대체 불가능한 데이터 소스다. 숙련공의 손끝 감각과 현장 노하우를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고 이를 AI와 로봇이 학습하게 만드는 일이 피지컬AI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것이 협회 표준협의회의 일관된 입장이다.
국산 월드모델, 예측에서 계획으로
기술 자립의 축도 함께 움직이고 있다. 마음AI는 LG전자가 주관하는 과기정통부 '피지컬AI 선도기술개발 사업'에 참여해 현실 세계의 변화와 로봇의 행동 결과를 예측하는 국산 월드모델을 개발 중이다. 이 사업에는 LG전자와 마음AI, KT, 홀리데이로보틱스, 로보티즈, 크라우드웍스, 알체라, KAIST, 서울대,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등 10개 산학연이 참여하며, 정부출연금 340억원과 민간부담금 약 157억원을 합쳐 2년간 총 497억원이 투입된다. 월드모델을 적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실제 로봇의 최종 동작 성공률을 20%포인트 이상 높이는 것이 목표다.
가상 공간에서 미래 상황을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로봇의 다음 행동까지 계획하는 월드 액션 모델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예측 정확도를 높이려면 양질의 행동데이터가 필요하고, 행동데이터를 대규모로 모으려면 표준이 필요하다. 모델과 표준은 별개 트랙이 아니라 같은 톱니에 물려 있다.
표준 선점 없이는 기술 자립도 없다
표준은 완성한 뒤 등록하는 문서가 아니라, 시장이 형성되기 전에 차지해야 하는 자리다. 과기정통부 지원으로 추진되는 '피지컬AI 표준전문연구실'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주관, 한국피지컬AI협회 참여로 가동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표준 정립에 머무르지 않고 초기 단계부터 국제표준화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협회 측 판단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기술 경쟁 못지않게 표준 선점 여부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시간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아시아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앞으로 5년 안에 피지컬AI를 장악하는 국가가 전 세계 패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며,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00만 대는 100만 개의 고립인가, 하나의 지능인가
정부의 목표치도 이미 제시돼 있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2030년까지 피지컬AI 세계 1위 달성을 목표로 인공지능행동계획을 마련했고, 제4차 지능형로봇 기본계획은 2030년까지 제조와 서비스 분야에 로봇 100만 대 보급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숫자는 답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다. 그 100만 대가 서로에게서 배울 수 없다면 100만 개의 고립된 기계로 남고, 배울 수 있다면 하나의 거대한 학습 시스템이 된다. 인터넷이 공통 규약 위에서 폭발했고 스마트폰 생태계가 표준화된 개발 환경 위에서 확산됐듯, 피지컬AI 산업도 행동데이터라는 공통 언어 위에서만 임계점을 넘을 수 있다.
세계의 로봇이 배우는 규칙을 누가 쓰느냐가 아니라 누가 만드느냐. 어제 국회에서 대한민국이 꺼내든 질문은 그것이었다.